사상 최악의 비관적 결말을 보여준 걸작 '미스트'

= 스포일러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

밥을 지으면서 뜸 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단연코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결말이 결코 허탈하지는 않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관점은 비관적이고 작품은 더 비극적이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연출력은 굉장하다. 한정된 공간인 마트에 갇힌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부분은 정말 빼어나다. 자의적이지만 극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서 화면에 집중해야 하는 우리도 고스란히 그 긴장감과 공포를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과는 다른, 편집 리듬은 조금 긴 듯 하지만 가공할 만한 집중력을 가진다. 화면 밖 사운드로 사람들의 수다가 들리는 가운데, 빠르게 지나가는 군대의 자동차와 소방차들을 잡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저 '묻지마' 서프라이즈가 아닌 제대로 된 서스펜스를 잡아준다. 그렇게 뜸을 들여가며 만든 공포는 괴물이 등장할 때 제대로 효과를 낸다.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기분을 억눌렀던 것이 괴물에 대한 두려움을 확실하게 가지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마트 안의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세심하게 그리는 연출은 영화의 황당한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각 캐릭터들은 여러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선과 악으로 뚜렷하게 갈리지 않는다. 즉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아니라서 더더욱 현실감이 부여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다가도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특히 두려움 때문에 성경책을 들고 외치는 카모디 부인(마샤 게이 하든)의 광신적인 종말론은 현실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괴물들의 공격만큼이나 허왕되게 들리는데, 지하철에서 일상적으로 종말론을 듣기도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탓에 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다라본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는 했지만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인간 내면에 있으며, 문명이 사라진 뒤에 남은 인간의 본성, 즉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괴물이 되어가는 인간의 본성이 섬뜩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이 영화의 독특한 결말이 더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영화들에서도 흔히 다루어온 소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사회의 축소판 같은 마트 안의 세상, 사람들의 충돌을 그려내는 솜씨는 앞서도 말했듯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이 중요해진다. 나이트 샤말란의 <사인>이나 프란시스 로렌스의 <나는 전설이다>에서 보여진 것처럼 정해진 운명이 만들어내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운명의 힘은 인간의 생존 의지를 뛰어넘는다. 스티븐 킹이 "인디영화 스타일(Indy feel)"이라고 말하는 비전형적이고, 예측불가능하며, 원작과도 다른 결말은 할리우드 스타일과 다른, 그래서 더 특별한 이 영화의 방점이다.

다른 차원에서 들어온 힘에 의해 지금 살고있는 세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운명의 시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심었던 나무가 뜻밖의 결과를 만들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여자가 의외로 마지막까지 생존하며, 주인공을 비롯한 마트 안의 사람들은 살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과는 정말 허무하다.

아니, 사실은 광신도가 부르짖던 지옥의 고통 그 자체다.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인간의 삶은 결국 안개 속이다. 인류 스스로 자초하는 종말론적인 상황들 앞에서는 인간의 의지는 벌레만도 못하다고 감독은 부르짖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군대의 비밀실험으로 상징되는, 평화라는 이름아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자행되는 파멸적인 행위들에 대한 비판이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데, 머리 뒤쪽이 뻐근하다. 탄탄한 스토리에 창의적인 결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악몽같은 걸작이다.

최근 들어 지구 종말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과 디스토피아적인 인류의 미래를 다룬 영화들이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28일 후>, <28개월 후>,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이 그랬으며, <나는 전설이다>(<28일 후>와 같은 원작이긴 하지만)가 그렇고, 나이트 샤말란의 <해프닝 Happening>, 선댄스 영화제의 화제작이었던 <시그널 Signal>,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한 <셀 The Cell>이 개봉 대기중이거나 제작 중이다. 그리고 종말적인 상황을 다룬 이 영화 <미스트>가 있다. 최근에 연달아 이 같은 소재로 제작된 영화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작품성을 보이거나 화제작 리스트에 올랐다.

저 유명한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도 무위로 끝났는데(아직 진행 중이란 주장도 많지만) 종말에 관한 이야기나 예언은 왜 계속 진행 중일까? 2012년 마야예언, 에드가 케이시, 고든 스켈리온, 실비아 브라운, 존 티토 등등. 끝 갈데없이 진화하는 사회에서 갈수록 무력해지는 인간의 불안감이 이런 종말론을 계속 재생산하는 건 아닐까? 우리는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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