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분노 怒り, RAGE, 2016' 믿음과 의심 사이, 그리고 분노

영화 '분노'는 요시다 슈이치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을 이상일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스릴러 드라마다.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총 1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 작품은 '신 고질라'와 '너의 이름은'에 밀려 남우조연상과 신인배우상 2개 부문만을 수상하는 데 그쳤다.

한여름 도쿄의 교외 주택에서 한 부부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피로 쓴 '분노'라는 글자를 남긴 채 사라지고, 경찰은 1년 동안 그의 행방을 찾지 못한다.

치바의 수협에서 일하는 중년의 요헤이(와타나베 켄)는 가출한 뒤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이코는 과거가 불분명하고 항구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청년 다시로(마츠야마 켄이치)와 사랑에 빠진다.

도쿄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신주쿠의 한 클럽에서 만난 나오토(아야노 고)와 동거를 하지만 그의 알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오키나와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친구인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와 함께 무인도로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홀로 지내는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라는 의문의 남자를 만난다.

부부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범인의 성형수술 정보와 그의 CCTV 영상을 확보하고 몽타주를 배포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변의 비슷한 인물을 의심하게 되고 정체가 불분명한 다시로와 나오토, 그리고 타나카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분노'는 원작자 요시다 슈이치가 밝혔듯이 2007년 3월 영국인 여강사를 살해하고 여러 번의 성형을 거쳐 2년 7개월 동안 도피 행각을 벌인 '이치하시 다쓰야' 사건이라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분노'는 기존의 추리물과 달리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사건의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는 세 인물과 주변인들의 반응을 보여주는데 그런 점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실은 원작자도 말했듯이 '의심'과 '믿음'에 관한, 사람들의 다소 감성적인 심리에 대해 그리는 드라마다.

극중에 나오는 인물들과 상황들은 모두 편견과 의심의 경계에 서 있다. 앞의 두 경우는 상대를 믿는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믿지 못한 이야기이고 마지막은 상대를 믿었지만 배신을 당한 이야기다. 타인에 대한 믿음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시험하는 것이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가 그리는 '의심'과 '믿음'에 관한 주제는 마음 속 깊이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하지만 세 번째 경우이자 진범인 타나카의 '분노'는 이유와 정체가 없다. 아무리 근원을 알 수 없는 분노일지라도 그것을 촉발하는 신호와 동기는 있는 법. 왜 제목과 주제의식이 '분노'인지는 극중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 없음이 결국 분노로 이어진다는 것일까.

한국 스릴러 영화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 진중한 작품은 호화로운 캐스팅과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물론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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