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법칙의 비밀 The Zero Theorem, 2013'이 말하고 싶은 것은?

'제로법칙의 비밀'은 테리 길리엄 감독이 연출한 철학적 SF 영화로, '브라질', '12몽키스'와 함께 3부작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각본을 쓴 팻 루신은 구약성경의 전도서에 나오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구절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시기를 알 수 없는 미래 세계. 맨컴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코언 레스(크리스토프 왈츠)는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어떤 전화를 받기 위해 재택근무를 간절히 원한다. 이후 파티에서 우연히 맨컴의 회장(맷 데이먼)을 만난 코언은 제로법칙을 증명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조건으로 집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차츰 코언을 압박하고 그의 심리를 점점 더 극단으로 몰아간다.

'제로법칙의 비밀'은 언뜻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 특유의 비주얼과 산만함을 걷어내면 그 안에 들어 있는 메시지는 심오하나 생각보다 그리 복잡하진 않다.

주인공 코언 레스는 평생 동안 삶의 의미를 찾아온 인물이다. 그는 회사가 보낸 여자인 베인슬리(멜라니 티에리)에게 자신이 기다리는 전화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자신이 그저 수많은 무리 중의 한 명일 뿐이라고 느낄 때 어느 날 잠결에 어떤 전화를 받았는데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그 전화는 제대로 받기만 했다면 분명 그에게 삶의 이유와 특별한 소명을 알려주었을 거라고 말한다.

코언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드립니다'라고 선전하는 맨컴의 존재론 연구부에서 일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또한 극중에서 설명은 없지만 코언 레스라는 이름은 삶의 의미를 찾는 책인 전도서의 히브리어 발음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후 코언은 베인슬리와 사랑에 빠지는 듯했으나 그녀가 그저 고용된 콜걸일 뿐이라고 믿게 되면서 함께 섬으로 떠나자는 그녀의 진심을 외면하고 제로의 법칙을 증명하는 프로젝트에만 매달린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의 목적은 사실 코언의 바람과 달리 모든 것이 공허하고 허무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있다.

결말부에서 코언이 다시 맨컴의 회장을 만났을 때 회장은 코언을 제로법칙 프로젝트에 투입한 이유에 대해 그가 삶의 의미를 찾느라 현재의 삶을 허비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며 더 이상은 그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힌다. 이에 코언은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깨닫고 분노한다.

결국 '제로법칙의 비밀'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시간(역사) 속에 사로잡힌 허무한 존재이니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시간)의 삶 속에서 기쁨과 행복,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중에서 우주도 결국은 블랙홀에 흡수되어 '0'으로 수렴된다는 제로의 법칙은 일종의 맥거핀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코언은 마지막에 블랙홀을 향해 몸을 던진 다음 베인슬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아름다운 섬에서 깨어난다. 엔드 크레디트에서 코언의 이름을 부르는 베인슬리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코언이 마침내 위안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테리 길리엄 감독도 이 영화의 결말이 해피 엔딩이라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제로법칙의 비밀'에 대한 해외 평단의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테리 길리엄 감독의 비주얼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너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인 잇 쿨'의 해리 놀스는 이 영화가 '브라질' 이후 테리 길리엄 감독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P.S. 엔드 크레디트 마지막에 짧은 영상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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