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따뚜이' 리뷰, 예술은 어디에서나 나올 수 있다.

"누구나 요리사가 될 수 있다."

 

누군가는 꿈을 위해 자신의 처지를 뛰어넘는 용기를 발휘하고 누군가는 견고하게 세워진 마음의 벽과 편견을 깨뜨리고 문을 열어야 한다.

 

영화를 보는 처음부터 관객은 자신이 가진 편견을 깨기가 상당히 어렵다. 생쥐가 사람이 먹는 음식을 요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벌써 파격적이다. 사람과 동물이 친구가 되어간다는 것과 쥐가 음식을 요리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설정이 파격적일수록 관객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효과 또한 크다.

 

극 중 음식 평론가 안톤 이고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 새로운 것에 관대해야 한다. 새로운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아이언 자이언트 The Iron Giant, 1999>, <인크레더블 The Incredibles, 2004>, 그리고 <라따두이 Ratatouille, 2007>를 보면 브래드 버드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꿈을 다시 기억해낼 수 있게 해주는 성인들을 위한 작품이다. 아이들은 알지 못할, 그리고 실사 영화와 다를 바 없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 들어 있기에 어른들이라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라따뚜이>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생쥐의 인간(?)승리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새롭고 '다른 것'을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나 하는 문제의식과 가족애, 그리고 사랑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상황(에피소드)은 단순하지 않다. 마치 프랑스 요리처럼 세심하게 조리되어 있다.



 



흔히 말하는 우리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의 차이, 국산 애니메이션과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차이는 무엇일까?

 

스토리라인에는 큰 차이가 없다. 결말을 향해 가기까지의 세심함에서 차이가 있을 뿐. 어떤 상황이 있고 그 속에 놓여있는 인물 혹은 캐릭터가 있다면, 그 캐릭터는 어떠한 생각과 동선으로 다음 장면을 향해 나아갈까? 이 지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우리가 대충 비벼먹는다면, 저들은 코스별로 꼼꼼히 시식한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차이가 더 벌어지는 것 같다. 자꾸 돈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이제 지겹다.

캐릭터를 보자.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캐릭터 비즈니스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다. 영화의 제작과 더불어 캐릭터들의 외양을 여러가지 형태의 상품으로 만들어내고 사업에 활용한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 자체가 그림에 생명을 불어 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의존성이 굉장히 크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플롯이 아니라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 캐릭터는 무엇인가? 캐릭터는 그저 외양일까? 아니면 단지 성격을 말하는 것일까? 캐릭터는 성격과 외양을 포함한 그 대상이 가진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대상이 가진 특성에 매력을 느끼고 끌리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목소리가 특별히 더 강조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캐릭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보여줄 건가? 이것이 재미의 시작이다.  

 

<라따뚜이>에서는 생쥐래미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네 발이 아니라 두 발로 걷고 자신보다 큰 냄비 안의 스프를 맛보기 위해 국자를 사다리로 사용한다. 이런 세밀함이 관객을 극 속으로 빨아들이고 그 캐릭터에 동화되게 만드는 마술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이런 것이 부족하다. 픽사가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발표할 때마다 새롭고 업그레이드된 비주얼 기술을 선보이기는 하지만 테크놀로지는 그 이후의 문제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그 점에서 성공적이다.

 

"모든 사람이 다 예술가가 될 순 없지만 예술은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

 

맞다. 그래도 떼를 지어 쏟아져 나오는 쥐들은 아직 견디기 힘들다.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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