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를 식힐 공포물로는 2% 부족한 영화 '1408'

<디레일드>에서 함정에 빠진 남자의 두려움을 그렸던 미카엘 하프스트롬은 <1408>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니 일단 영화만 생각해보자.

공포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408>의 경우에는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 듯하다. 대상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포와 대처가 불가능한 데서 오는 공포. 이 두 가지 공포의 기점이 바로 돌핀 호텔 1408호 투숙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이렇다. 주인공 마이크 엔슬린은 귀신이 들렸다는 숙박시설을 돌아다니는 작가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그에게 그 일은 단순한 노동에 가깝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오지의 여관까지 찾아가도 귀신은 그저 사람들의 착각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편집장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돌핀 호텔을 찾아간다. 일단 우리는 편집장이 걱정하는 내용이 뭔지 모르고 마이크의 어두운 표정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불길함을 느낀다. 거기다 마이크가 찾아간 돌핀 호텔 역시 무엇 때문인지 투숙을 무척 기피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쯤 되면 정말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호텔의 매니저인 올린이 설명하는 1408호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로 끔찍하다. 그 방에 들어간 한 사람은 10분만에 자기 두 눈을 도려냈다니 말 다했다.

올린의 끔찍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으면서 그 방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마이크의 시선으로 보노라면 도대체 그 방에 무엇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마이크가 우리들 일반 관객보다 훨씬 더 귀신 같은 영적인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그가 조금만 거리낌을 가져도 우리는 벌써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이크가 1408호에 투숙하게 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하나둘 일어나기까지 우리는 대상의 실체를 알지 못하는 데서 오는 초조함을 느낀다. 그것이 첫 번째 공포다.

두 번째 공포부터는 좀 싱거워진다. 이해 못할 초자연적인 현상 혹은 환영이 마이크에게 연달아 펼쳐지면서 대처가 불가능한 그 현상 자체가 공포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현상에는 적의가 있을 수 없기에 공포심이 현저히 줄어든다. 교통사고나 자연재해가 두렵긴 해도 내 주변에서 나를 노리는 살인자처럼 무서울 수는 없는 것처럼.

어쨌든 초자연적인 현상이 이유를 모른 채 반복되면서부터 영화가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감독도 그걸 느꼈는지 중간중간에 칼을 들고 그를 위협하는 존재도 넣어놓았지만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그 후로는 반전이 있고 또 한 번의 위험이 닥친 다음 결말에 이른다.

그렇다면 1408호의 정체는 무엇일까? 결말에 이른 다음에도 관객이 1408호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이 이 영화를 열린 결말로 이끈다. 영화를 볼 때 장르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에게는 열린 결말이 일종의 괴로움이다. 호러 영화는 흔히 맨 마지막에 도식적인 반전 장면을 넣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악당이 되살아나곤 하는데 이런 반전은 이제 많은 관객들에게 애교쯤으로 생각될 만큼 흔한 행사치레가 되었다.





<1408>의 맨 마지막 반전 역시 흔한 것이긴 한데 주인공의 가치관의 변화와 관계된 문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조금 다른 듯하다. 마이크는 영적인 존재를 전혀 믿지 않았지만 녹음기에 남은 딸의 목소리를 듣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인 우리는 그의 변화를 예감하게 된다.

마이크에게 영적 존재를 깨닫게 해준 1408호는 선인가 악인가? 마이크가 그 방에서 죽은 딸을 만나 극악한 괴로움을 다시 맛보고, 죽은 아버지를 만나 관객은 알 수 없는 어떤 죄의식을 다시 경험하는 걸 보면 1408호는 고통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1408호가 악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장르적인 공포영화라고 분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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