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학살기관 虐殺器官, Genocidal Organ, 2016' 평화와 맞바꾼 자유

영화 '학살기관'은 일본 작가 이토 케이카쿠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을 무라세 슈코 감독이 각색하고 연출한 SF 액션 애니메이션이다.

가까운 미래. 9.11 테러 이후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극단적 개인 감시체체를 구축해 테러의 위협에 맞섰지만, 사라예보에서 핵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후진국 등 제3세계에서는 전쟁과 테러, 학살이 격화된다. 이에 미 정부는 증가하는 학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새로운 정보군을 창설한다.

새 정보군 소속의 클라비스 대위는 '학살의 왕'으로 불리며 후진국들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혼란의 배후 인물인 존 폴을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존 폴이 목격된 체코 프라하에 잠입해 존 폴의 연인이었던 루치아에게 접근한다. 마침내 존 폴을 찾아낸 클라비스는 과거 우수한 언어학자였던 그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과연 분쟁과 학살을 선동하는 존 폴의 목적은 무엇일까?

'학살기관'은 2009년 34세의 나이에 암으로 요절한 천재 SF 작가 이토 케이카쿠의 2007년 데뷔작이 원작으로, '세기말 하모니', '죽은 자의 제국'과 함께 그가 남긴 디스토피아 3부작을 영상화하는 '이토 프로젝트'(Project Itoh)의 마지막 애니메이션이다. 제작사인 '맹글로브'의 경영 파탄 때문에 한때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으나 이토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설립된 '제노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학살기관'은 이야기의 논리적 근거로서 워프와 샤피어의 '언어결정론'을 끌어들였는데, 설정과 플롯이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보편성은 갖추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완성도가 높고 사실적인데, 특히 가까운 미래이지만 현재와 큰 차이가 없는 현실적이면서 세밀한 배경 그림과 미래의 기술에 대한 묘사 등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부족하고 음모에 대한 폭로와 누설이 주인공의 추적과 추리가 아닌 용의 대상들의 주장과 설명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반감시킨다.

해외 평단은 '학살기관'에 대해 대체로 호평했다. 극중에서 핵폭탄 테러가 발생한 사라예보는 실제로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을 겪으며 수많은 생명이 희생당한 곳으로, 이 같은 설정은 인류의 역사가 야만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비극의 장이라는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또 뛰어난 비주얼은 이토 케이카쿠의 멘토였던 코지마 히데오의 잠입 액션 게임 시리즈 '메탈 기어 솔리드'를 연상케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단점이며 영어 더빙이 된 작품을 보는 것이 백인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지적했다.

일본 팬들의 반응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만 평화롭고 안전하면 다른 곳에서 학살이 일어나도 괜찮다는, 현실에 둔감한 인간들의 이중적 윤리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동기가 부족한 점도 있지만 재미있다', '애니를 보기 전에 소설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원작을 잘 소화했다', '상상이상, 리얼리티가 있는 최고의 걸작 애니메이션', '비주얼이 뛰어나다', '박력 넘치는 액션 씬' 등 호평이 많았다. 반면에 '난해하다', '과연 자국의 행복을 위해 타국을 희생시켜도 용서가 되는 것일까?', '원작의 해석을 잘못했다', '메시지에 동의할 수 없다', '소설을 읽지 않고는 결말이 납득되지 않는다' 등의 부정적 반응도 있었고 '나도 극중에 나오는 피자가 먹고 싶다' 라는 공감 가는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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