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Le passe, The Past, 2013' 베레니스 베조가 벗어나지 못한 과거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는 이란 출신의 스토리텔링의 거장 아쉬가르 파라디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드라마로, 그의 모국어인 페르시아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한 작품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합작한 이 영화는 제66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베레니스 베조)을 수상했다.

마리(베레니스 베조)와 4년째 별거 중인 아마드(알리 모사파)는 그녀의 요구로 이혼을 매듭짓기 위해 테헤란에서 파리로 돌아온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은 아마드는 마리의 집에서 잠시 머물 생각이었으나 마리와 전 남편이 낳은 두 딸 루시(폴린 버렛)와 레아(쟌느 제스탱), 그리고 마리와 곧 결혼할 사미르(타하르 라힘)의 아들 푸아드(옐예스 아귀스)를 만나면서 그 가족에게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다음 날 아마드는 법원에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후, 엇나가는 큰딸 루시의 속마음을 알아봐 달라는 마리의 부탁으로 수업을 마친 루시를 찾아간다. 루시는 그에게 사미르의 부인이 지금 혼수 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이며 그것이 엄마 마리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서도 여전히 탁월한 스토리 텔러의 면모를 보인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강렬한 이야기를 예측하기 힘든 플롯으로 이끌어가는데, 마리가 과거에서 비롯된 백스토리의 중심에 서 있고 여기에 아마드가 관찰자이자 촉매자로서 미스터리 같은 가족의 숨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마음을 뒤흔드는 갈등과 마주한 등장인물들의 반응, 그리고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통찰력 있고 디테일하며, 인물들을 관찰하는 듯한 카메라는 담담하면서도 몰입도가 높다. 죄의식과 욕망 사이에서 고민하는 배우들의 내면 연기도 뛰어나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주인공들의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마지막의 모호한 장면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나?'라고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한데, 관찰자적인 시점의 카메라는 남의 삶을 엿보는 듯한 관음증적인 면도 있지만 관객도 극중 인물들이 느끼는 압박감과 죄의식을 함께 느끼도록 만든다.

사미르의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마리와 아마드의 관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듯 보이는데, 현재의 모든 결과가 과거에 마리가 내린 결정과 행동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영화의 제목이 '과거'인 듯하다.

해외 평단과 관객들은 대체로 이 작품을 그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으면서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이 보여주는 인간 정서의 보편성과 우아한 스토리 텔링에 대해 극찬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가 비극적인 신화와 같은 위엄을 지녔다고 호평했다.

아쉬가르 파라디는 이란에서 페르시아어로 각본을 완성한 후 프랑스어의 리듬을 이해하기 위해 2년간 프랑스에서 살았다. 그래서 각본의 번역과 배우들의 연기를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어를 못 하기 때문에 통역을 두고 영화를 연출했다.

또 주연배우인 아마드 역의 알리 모사파도 영화를 찍기 전 두 달 동안 아내 레일라 하타미의 도움으로 프랑스어를 배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원래 마리 역은 마리옹 꼬띠아르가 맡기로 했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무산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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