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 Her' 리뷰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그런 존재다.

장면 1

극중 주인공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감성적인 남자이다. 그는 자신의 일터인 ‘아름다운 손편지닷컴’에서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하는 작가로 일한다. 사람들은 그가 쓴 편지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 만큼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글이라고 찬사를 보내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저 대필한 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다. 관리자인 폴(크리스 프랫)은 테오도르가 쓴 연애편지를 보고 칭찬하면서 편지가 대필이고 진짜 여자가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신은 그 편지를 받아보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말한다.

장면 2

테오도르는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한 아파트에서 같이 사는, 대학 때부터 친구인 에이미(에이미 아담스)와 그녀의 남편을 만난다. 에이미의 남편은 테오도르가 들고 있는 스무디를 보고 과일은 갈아 마시면 그냥 설탕물일 뿐이라며 건강을 생각한다면 과일은 덩어리 그대로, 채소는 갈아서 먹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옆에서 눈치를 보던 에이미는 테오도르가 난처해 할까봐 남편에게 스무디가 비록 설탕물에 불과해도 그걸 마시고 본인이 행복하다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장면 3

테오도르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소개팅녀(올리비아 와일드)를 만나지만 끌림과 위안을 느끼지 못한다. 외로움 속에 방황하던 그는 우연히 인공지능 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 목소리)를 알게 되고 차츰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테오도르와 별거 중인 아내(루니 마라)는 그가 인공지능 OS 사만다와 사귄다는 말을 듣고 사람의 진짜 감정은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냐며 그를 비난한다.

제86회 아카데미상 각본상 수상작인 영화 '그녀'는 인공지능과의 사랑과 교감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지 로맨스 혹은 멜로드라마로만 본다면 우리는 더 큰 것을 놓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인공지능과의 사랑과 교감은 소재일 뿐이지 주제의식은 아니다. ‘사랑의 대상, 그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랑의 감정 행위가 중요하다’는 식의 은유로 영화를 읽는다면 그것은 오독이 될 수도 있다.

질문 1

그렇다면 테오도르가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테오도르는 전처에게도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에게도, 그리고 랜덤 채팅에서 만난 익명의 여성에게도 끌림과 위안을 얻지 못한다. 전처는 테오도르가 그녀의 우울한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항상 밝고 유쾌한 모습만을 보기 원했다며 날을 세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테오도르는 OS 사만다에게는 반응을 하고 그녀와 같이 있는 시간이 즐겁고 유쾌하다. 심지어 예전에 잊어버렸던 설레는 느낌과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고 주변에 고백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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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테오도르의 외로움은 사실 자신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그가 소울메이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둥 사랑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둥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정의를 내려도, 그가 OS 사만다에게 끌리는 본질적 이유는 그가 원하는 것을 사만다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그녀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 것이다.

질문 2

그렇다면 과연 인공지능이 사람과 사랑의 교감을 나눌 만큼 감정을 표현하고 느낄 수 있는가?

OS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인공지능이다. 그렇다면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서 최적화된 반응을 내놓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액션에 단지 리액션을 취하는 것일 뿐이지 교감이라 불릴 만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의 감정과 사랑도 세포와 호르몬이 보내는 정보를 취합한 결과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상대방에 대한 반응과 감정이 생성되는 과정도 인공지능이 반응을 도출하는 사고 과정과 유사하다고 할 수도 있고, 덧붙여 인간의 감정들도 인공지능의 수학적 결과로 도출된 가짜 감정처럼 허상일 수 있다고까지 주장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상대가 인공지능이라도 충분히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욕망하는 존재이다. 또 사회적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고 감정을 표출한다. 인공지능은 자아도 없고 욕망도 없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스스로 감정을 표출하지만 자아가 없는 인공지능은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점이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에 최적의 반응을 내놓는 인공지능과 교감을 나누고 또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가진 자기애의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위에서 소개한 장면 1, 2, 3처럼 역시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려 하는 자기중심적 존재이다.

사만다의 목소리는 원래 사만타 모튼이라는 여성이 맡았지만 뭔가 부족한 감을 느낀 스파이크 존스 감독이 스칼렛 요한슨에게 부탁을 해서 목소리 녹음을 다시 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OS 사만다가 말을 할 때면 곧바로 스칼렛 요한슨이 떠올랐고 다른 영화에서 보았던 그녀의 표정, 움직임이 떠올랐다. 그랬기에 감정이입이 쉬웠다. 그게 바로 감독이 느꼈던 부족한 무언가가 아니었을까.

테오도르는 다채로운 색감의 셔츠를 바꿔 입음으로써 그의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구축하고  다양한 준비와 여파 씬으로 그의 내면을 표현한다. 몽환적인 음악들은 화룡점정. 감독의 연출이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영화 '그녀'는 단지 미래의 로맨스나 또는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이고 수작이다.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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