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Arrival, 2016' 리뷰, 최고의 작가와 감독이 만난 걸작

= 경고합니다.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며 당신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면 리뷰를 읽는 것이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습니다.=

영화 '컨택트'는 휴고상, 네뷸러상 등 8개의 상을 수상한 SF 소설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를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한 SF 드라마다.

영화 '컨택트'는 어느 날 지구에 사람들이 '쉘'이라 이름 지은 외계우주선 12척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세계 각국은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자 등 전문가들을 동원해 대화를 시도한다. 헵타포드라 불리는 외계인들은 언어학자인 루이스와의 소통에서 자신들이 지구에 온 이유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컨택트'는 개인적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만한 영화다. 외계인과 소통하는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가는 서사형식이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흔히 SF 영화에서 기대할 만한 별다른 액션 장면 하나 없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컨택트'는 사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장르 영화라기보다는 영화의 주제의식과 서사형식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예술 영화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테드 창은 원작 소설에서 굉장히 지적이고 독창적인 서사를 보여주는데, 영화는 비록 소설과 다른 부분이 많긴 하지만 더 이상 나은 각색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각본으로 풀어냈다.

원작에서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서사형식인데 그것은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사고 방식이나 세상을 감지하는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워프와 샤피어의 '언어 결정론'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고, 언어학자 루이스는 영화의 중반에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해 그들이 세상을 감지하는 방식을 공유하게 되면서 그들의 시간 감지 방식까지 흡수함으로써 미래를 내다보게 된다.

그 지점에서 영화의 도입부가 보여주는, 과거의 일인 줄만 알았던 죽은 딸과의 추억은 미래가 되고 딸의 아버지가 되는 물리학자 이안과의 만남은 현재이자 과거가 된다. 영화의 서사형식이 바로 외계인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고 그것을 관객과 공유하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외계인의 문자 형태도 그들의 시간, 세계관을 표현하는 원형으로 드러난다.

테드 창과 드니 빌뇌브의 의도와는 별개로 외계인들의 세계관이 기독교적 시간관과 닮아 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기독교적 시간관에는 지상의 인과적이고 선형적 역사 외에도 시작과 끝이 함께 존재하는 하늘의 묵시가 존재한다. 또 지구에 도달한 우주선이 모두 12대라는 것도 예수의 열두 제자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테드 창이 '페르마의 원리'를 빌어 설명한 것처럼 이미 미래에 도달(Arrival)해 있는 루이스가 이안과 이혼하고 딸 한나를 희귀병으로 잃게 될 줄 알면서도 앞으로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결정론적인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루이스의 태도는 단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외계인의 언어를 공유하게 될 인류가 함께 겪게 될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전 인류가 도달할 일종의 '의식 혁명'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전통적인 SF소설들에서 흔히 보아왔던 이야기로, 뉴에이지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외계인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공유하게 된다는 영화의 반전은 '쉘'이라 불리는 우주선이 사실은 외계인이 소통을 하기 위해 보낸 '채경(Looking Glass)', 즉 일종의 통신 모니터일 뿐이라는 소설의 반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영화의 서사 전체는 원작이 지닌 행간의 의미와 주제의식을 남김없이 잘 전달하고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천장의 무늬와 건물의 형태, 의자의 배열 등을 활용한 카메라 워크로 외계인의 언어와 시간관 같은 원형적인 무한의 이미지를 영화 곳곳에 배치해 보여준다. 언어학자 루이스 역을 맡은 에이미 아담스는 원작이 그려내는, 딸을 추억하는 엄마의 감성적인 문장들을 섬세한 연기로 잘 살려냈다. 조개껍데기처럼 보이는 우주선 쉘과 외계인의 문자 디자인도 굉장히 창의적이다.

테드 창의 이야기는 소통에 대한 함의이기도 하겠지만 확정된 이론이나 주장이 아니라 '페르마의 원리'와 '언어 결정론'에서 따온 독창적인 한 가설이기도 하다. 원작과 영화는 분명 그 가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가설이나 서사의 훌륭함과는 별개로 과연 그 서사의 방식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는가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영화가 던져주는 묵직한 메시지 앞에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 이들이나 못 한 이들이나 모두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같은 반응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택트'가 대단한 예술적 성취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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