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리뷰] 영화 '트랜센던스 Transcendence'

1. 특이점

영화의 제목인 ‘트랜센던스’는 무슨 뜻일까? 사전에서 ‘초월’이란 말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 윌 캐스터 박사(조니 뎁 Johnny Depp)의 강연을 통해 설명된다. 윌은 일부 과학자들이 일컫는 ‘특이점’이라는 개념을 자신은 ‘트랜센던스’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특이점’이란 무엇인가?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Ray Kurzweil은 자신의 책 <특이점이 온다. The singularity is near : when humans transcend biology, 2005>에서 미래에는 기술 변화의 속도가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영향력이 매우 커서 인간의 삶이 변화되는데 그 시기를 ‘특이점’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나노 의학이 노화를 멈출 수 있고 기술 발전을 통해 인류가 다음 단계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인간은 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개념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다는 점에서 각본을 쓴 잭 파글렌 Jack Paglen이 레이 커즈와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컴퓨터 과학자인 부인의 도움을 얻었을 뿐 아니라 여러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2. 튜링 테스트

영화 초반부에 윌 캐스터 박사는 인공지능 개발에 반대하는 테러단체 RIFT의 암살 시도로 인해 시한부 삶을 살게 된다. 이에 아내 에블린(레베카 홀Rebecca Hall)은 친구 맥스(폴 베타니 Paul Bettany)와 함께 인간처럼 사고하며 인류의 지적 수준을 넘어서는 ‘트랜센던스’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양자컴퓨터 ‘핀’에 윌의 정신을 업로드한 인공지능이다.

그런데 알려진 바와 같이 인공지능이 실제로 인간과 유사한 사고를 한다고 인정하기 위해서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튜링 테스트란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해독가인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방법으로 제시했다. 인간이 대상이 컴퓨터란 것을 모른 채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컴퓨터임을 구별해낼 수 없으면 그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얼마 전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완전한 인공지능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인간처럼 사고하는 진정한 인공지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자아인식’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 ‘자아인식’이란 인공지능이 자기 자신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공지능도 사람처럼 지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에 반응을 하고 그 체험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한 자신을 자각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학습도 할 수 있고 판단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자신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인공지능은 진짜 사람과 비슷한 사고를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트랜센던스가 진정한 인공지능임을 어떻게 보여주었을까?

세계 최고의 양자컴퓨터 핀은 ‘자각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느냐’는 태거 박사(모건 프리먼 Morgan Freeman)의 질문에 ‘그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박사님은 증명할 수 있나요?’ 하고 반문해 그 증명을 피해갔다. 그리고 나중에 윌이 업로드된 트랜센던스는 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함으로써 과거에 들었던 태거 박사의 질문과 핀의 대답을 기억할 뿐 아니라 유머감각까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을 설득시킨다. 잭 파글렌의 각본 솜씨가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억을 넘어서 그 속에 담긴 감정과 정서까지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3. 우상

트랜센던스에 업로드된 윌은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 듯 네트워크에서 슈퍼 인공지능을 등에 업고 신으로 군림한다. 마치 예수처럼 나노 머신 입자로 장님의 시력을 되찾아주고 거의 죽은 사람을 살리며 병든 자들을 고치는 기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자신의 생각대로만 세상을 움직이려는 독선이 숨어 있다.

윌이 RFIT소속원에게서 ‘당신은 자신만의 신을 만들려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인류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오지 않았냐?’고 대답하는 장면은 영화 후반부의 전개를 암시한다. 하지만 사실 자신만의 신인 우상을 만드는 행위는 윌의 말처럼 전 인류가 해오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신 앞에 절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나가길 원한다. 그러면 신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4. 고요하지만 도발적 엔딩

마지막에 윌은 에블린이 자신을 파멸시킬 바이러스를 가져온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받아들여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진짜 윌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에블린에게 바이러스의 존재를 알고도 받아들임으로써 진짜 윌이 맞음을 보여준다. ‘봐라! 인공지능도 인간을 품을 수 있다’라고.

그리고 …

영화의 끝 장면에서 맥스는 땅바닥에 고여 있는 빗물을 바라보며 “이게 끝이 아니다. 끝일 리 없다”라고 말한다. 이미 생태계로 퍼져버린 나노 머신 입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느 별이든 외계생명체의 존재 유무를 거론할 때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그 별에 물이 존재하는가이다. 물은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물 속에 나노 머신 입자가 들어있다.

즉 다음 단계로의 인류의 진화는 결코 거부할 수 없고 어쩌면 지금 진행 중이라고 강하게 암시하는 듯한 장면이다. 누군가가 영화를 빌어 인류는 다음 단계로 올라서야한다고 선전, 선동하는 것 같다.

5. 기술과 인류의 충돌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몸을 기계로 바꾸어서라도 불멸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자신의 육체가 아니라 기계를 입고 있어도 영생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은 만족할 수 있을까? 그리고 행복할까?

<트랜센던스>는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이다. 과연 인간다운 것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완벽하지만 기계인 인간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결점이 많더라도 피가 흐르는 육체를 가진 인간을 택할 것인가?

그러나 이런 진지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여러 제작자가 탐을 낸 새내기 작가의 천재적인 각본이라고 광고하는 것에 비해 사실 영화는 여러모로 어정쩡하다.

기술 발전이 가져다주는 혜택과 폐해의 대립을 첨예하게 다루는 것도 아니고 천재 과학자 윌과 그의 동료이자 아내인 에블린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볼만한 액션이 많은 것도 아니다.

다만 SF 영화는 검증되지 않은 과학 이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론이 영상 속에서나마 실존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트랜센던스>도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소재이지만 그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하고 있는 셈이다.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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