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리치: 소멸의 땅 Annihilation, 2018' 결말과 해석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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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연출을 맡은 SF 판타지 영화로, 미국 작가 제프 밴더미어의 '서던 리치 3부작' 가운데 첫 권을 각색했다.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배급권을 넷플릭스에 팔았는데 테스트 시사를 통해 영화가 지나치게 지적이고 복잡하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남부 해안의 어느 등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물체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마치 흐르는 듯 보이는 무지개색 경계가 생겨나 차츰 영역을 확장해나간다. 미국 정부는 '쉬머'라고 이름 붙인 그곳의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 서던 리치라는 연구시설을 세우고 열한 번에 걸쳐 탐험을 시도했으나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드론도 돌아오지 못했다.

생물학 교수인 리나(나탈리 포트만)의 남편 케인(오스카 아이삭)도 그곳에 들어가 소식이 끊어진 상태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무런 기억이 없는 그는 내출혈을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정부 요원들에 의해 서던 리치로 가게 된다.

그제야 쉬머와 남편의 임무에 대해 알게 된 리나는 그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심리학자 벤트리스(제니퍼 제이슨 리)가 이끄는 열두 번째 탐험대에 자원한다. 그런데 그동안 탐험대들이 돌아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하나는 그곳에서 무언가가 그들을 죽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미쳐서 서로를 죽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지난 2월에 개봉한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은 '최근에 쏟아지고 있는 SF 영화들 가운데 최고의 작품 중 하나', '앞으로 수년 동안 분석하게 될, 놓쳐서는 안 되는 영화',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적자가 될 만하다'는 등 많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팬들 중에서는 영화의 내용, 특히 결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이 많아 논란이 이어지면서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우선, 극중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인간의 자기파괴 성향이다. 벤트리스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자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파괴를 한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셔서 건강을 해치는 것, 행복한 결혼생활을 망치는 것 등이 그런 예다. 케인이 집에 없는 동안 리나가 직장 동료인 댄과 바람을 피웠고 아마도 그 사실을 알아차린 케인이 자살과 다름 없는 탐험대 임무에 자원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등대에 도착한 리나는 굴 안에서 외계 물체와 맞닥뜨리고 그 물체는 그녀와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을 만들어낸다. 리나가 쥐어준 백린탄에 불이 붙은 복제인간은 그 불을 굴 안에 옮겨 붙이는데 그 영향으로 쉬머가 사라진다.

겨우 백린탄 한 발로 쉬머가 전부 사라졌다는 말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복제인간은 리나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복제를 한 것이고 리나에게 내재된 자기파괴 성향까지 흡수했기에 스스로 자기파괴에 이르렀다는 것이 더 그럴듯한 설명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는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서던 리치로 돌아온 리나는 상태가 호전된 케인을 만나 포옹을 하지만 두 사람의 눈동자가 쉬머의 빛으로 반짝인다. 마지막 장면은 케인뿐 아니라 리나 역시 진짜가 아닌 복제인간임을 암시한다. 그녀가 복제인간이라면 그녀의 진술 역시 거짓일지도 모른다.

돌아온 리나가 복제인간임을 암시하는 단서는 또 있다. 탐험 중에 리나가 멍이 생겼다면서 왼팔을 만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는 분명히 없었던 8자 뱀 문신이 나중에 생긴 것을 볼 수 있다. 그 뱀 문신은 리나가 다른 존재에게 완전히 먹혔음을 뜻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그리고 그녀가 심문 중에 물을 마셨을 때 컵 안의 물이 변이를 일으키는 듯한 장면도 또 다른 단서다. 결국 쉬머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케인과 리나라는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인류는 영화의 영어 제목처럼 '전멸'(Annihilation)을 향해 간다는 것일까? 리나는 케인에게 세포가 노화하지 않고 계속 분열하면 인간이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고 평소에는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라는 책을 읽었다. 팔뚝에 생긴 뱀 문신의 8자도 무한대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게다가 돌아온 리나는 쉬머의 활동을 파괴가 아닌 변화라고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케인과 리나의 복제인간이 등장한 것은 외계인과 결합한, 죽음이 없는 새로운 인류로의 진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영화의 결말은 마치 속편을 예고하는 것 같지만 속편의 가능성은 크지 않은 듯하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이 영화의 각본 작업을 시작한 것은 '서던 리치 3부작'의 첫 권밖에 아직 나오지 않았을 때였고 나머지 두 권이 나오고 나서도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책은 영화와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는데 첫 권은 리나가 죽은 남편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쉬머 안에 더 머물기로 하면서 끝이 난다. 따라서 만일 속편이 나오더라도 원작과는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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