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영화 '루시 Lucy'의 결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 스포일러를 완전 포함하고 있으니 영화를 볼 분들은 읽지 말 것을 권합니다 =

 

어차피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탓일까. 재미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 크게 틀리지도 않았다.

영상미가 좋다지만 그 정도 영상이야 다른 영화들에도 널리고 널려 있다. 액션 씬도 특별할 게 없다. 더군다나 스토리는 더 별 게 없었다.

'루시'가 관객에게 주는 미덕이라면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최민식이라는 우리 배우가 스칼렛 요한슨 Scarlett Johansson, 모건 프리먼 Morgan Freeman과 함께 한 화면 안에 같이 등장한다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부족한 시나리오와 연출이 그 빛나는 배우들의 매력마저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참고로 뤽 베송 Luc Besson 감독이 각본과 연출 모두를 담당했댄다.

루시(스칼렛 요한슨)가 호텔 스위트룸으로 잡혀가고 미스터 장이 등장하는 초반 씬은 꽤 좋았다. 배우 최민식의 카리스마 넘치는 ‘미스터 장’ 연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대로 한국어를 모르는 관객들 입장에서는 루시가 느끼는 공포감이 아주 잘 전달되었을 것 같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다였다.

의외였던 것은 비교적 극의 초반에 루시가 각성을 하고  미스터 장을 다시 찾아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를 죽이고 복수할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놔두었는데 사실 그 이유가 모호하다. 그를 죽이나 죽이지 않으나 능력을 얻은 루시에게는 별 차이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여야 할 사람을 죽이지 않은 데는 반드시 이유가 따르는 법. 오히려 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루시는 그를 왜 안 죽였을까?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뒤에 미스터 장이 “그년은 직접 내가 죽인다.”라는 약간은 순서가 바뀐 어색한 말투를 쓰면서 루시를 찾아온다.  그를 죽이지 않은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미스터 장이 루시를 다시 찾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면 그녀를 다시 찾게 만든 이유는 뭘까?

루시의 동기가 잘 보이지 않기에 ‘그의 일을 망쳤기 때문에, 또 그의 양 손등에 칼을 꽂았기 때문에 빡쳐서’라는 미스터 장의 입장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 이유는 결국, 단지 왁자지껄한 액션이 들어간 그럴듯한 클라이맥스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스터 장이 루시를 세상 끝까지라도 쫓는 집요하고도 강력한 악당이라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을 보는 맛에 영화에 쉽게 몰입이 되는데, 오로지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의 아우라에 기댄 때문이지 탄탄한 각본과 연출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다. 시나리오에서 캐릭터들의 내적 동기는 상당히 빈약하고 억지스럽기 때문이다.

판타지 영화를 생각해본다면 소재나 설정 자체가 허황되더라도 각 인물들과 이야기의 내적 동기가 산다면 그 판타지에서도 리얼리티가 생기는 것처럼 루시가 대척점을 이루는 미스터 장을 살려둔 동기가 명확하고 극의 전개가 좀 더 촘촘했다면 배우의 매력과 존재감도 훨씬 더 살았을 것이다.

'레옹 Leon, 1994'에서 게리 올드만 Gary Oldman이 연기했던 악당인 부패경찰 스탠스는 그들을 집요하게 좇는 이유가 명확했다. 그래서 게리 올드만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상적인 개념을 말하는 소재와 단순하지 않은 배경 이야기 Back Story를 너무 압축시켜놓았기 때문에 루시의 내적 동기나 선택도 설득력이 약해진다. 그러다보니 이 또한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에 많이 의존한다. 영화를 보면서 다시 느꼈다. 역시 그녀는 정말 좋은 배우이다.

전반부, 이야기의 급작스런 전개를 노먼 박사(모건 프리먼)가 강연을 하는 것으로 교차 설명하는 형식은 좋았다. 그리고 강연할 때 삽입되는 다큐 화면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설명 장면을 잘 보완하는 것이었기에 괜찮았다. 그렇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다큐멘터리 화면이 과도하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다. 차라리 다큐멘터리 필름 같은 화면들을 줄이고 이야기를 더 짜임새 있게 만들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럼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어떨까? 그리고 결말은...

10억 년 전에 얻은 생명으로 인간은 무엇을 했나?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 약간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읽혀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감독은 루시의 변형을 빌어 인간이 이제 진화에서 혁명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 가야한다고 말한다. 뭐, 별로 독창적이진 않지만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야기보다 노먼 박사의 ‘세계가 수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루시가 ‘자동차의 속도가 무한대가 되면 그 존재는 우리의 눈에 보이질 않게 되는 것처럼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사이트 insight가 있었다.

헬라어로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 Chronos가 그리스 신화에서 태초의 신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인간은 역사라는 시간을 초월해서는 살 수가 없다. 인간은 시간에 갇혀 사는 존재이며 그 시간을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신이 되거나 죽음에 이르는 길 밖에는 없다.

'루시'는 인간이 신이 되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방법이 황당무계할지라도.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처럼 개연성 있게 뇌의 기억을 컴퓨터에 업로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사이버 펑크 애니메이션들처럼 안일하지만 신체의 변형과 기계와의 합일을 통해서 말이다. 

루시는 마지막에 ‘그녀는 어디에 있나?’라고 사람들에게 묻는 파리 경찰 피에르 델 리오에게 바로 보낸 휴대폰 문자에서 ‘자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마치 신神처럼.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욕망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욕망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신처럼 바라보는 눈을 가지는 원죄를 짓게 되었다는 이야기처럼 영화 '루시'는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자신이 신 God처럼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와 지식을 모두 이해하고 알길 원한다. 그리고 작게는 자신의 삶을, 크게는 타인과 세상을 신과 같이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슈퍼맨처럼.

'루시'는 바로 그런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면서 인류가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해야 할 것은 진화가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좀 더 가치중립적인 도약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 영화가 굉장히 상업적이며 동시에 단지 그 목적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다고 생각되지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어떤 음모론처럼.

과연 영화처럼 인류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을까?

P.S.

1. 음모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유행처럼 세계를 휩쓰는 마블의 히어로물들과는 또 다르게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 '디스트릭트 9 District 9, 2009', '엘리시움 Elysium, 2013', '트랜센던스', '닌자 어새씬 Ninja Assassin, 2009' 등의 영화들과 공통점이 있는 영화로 보인다. 마치 각각의 맡은 역할들이 있는 것처럼.

2. 뤽 베송은 정장을 빼입은 악당을 참 좋아하는 듯. '레옹'의 부패경찰 스탠스가 그렇고 '키스 오브 드래곤 Kiss Of The Dragon, 2001'의 부패경찰 리처드(체키 카료 Tcheky Karyo)도 그렇다.

3. 극장에는 2, 30대 관객뿐 아니라 4, 50대 관객도 눈에 많이 띄었는데, 단지 배우 최민식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를테면, 감독인 뤽 베송이 그들의 젊은 시절의 한 페이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는 스타 감독이었으니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레옹', '그랑블루Le Grand Bleu, The Big Blue, 1988', '제5원소The Fifth Element, 1997'를 안 본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듯. 과거를 추억하기에는 딱! 그래서 '레옹'의 게리 올드만을 떠올리게 만드는 배우 최민식의 캐스팅은 감독의 의도된 신의 한 수랄까.

4. 자신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면서 대체 루시는 노먼 박사에게 usb는 왜 준 거야!
 

MOVIEblog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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